2025년 09월 13일 토요일

박물관 다 비웃는 '고고학 유희' 전시 화제…당신이 알던 유물의 개념이 완전히 뒤집힌다

2025-09-11 17:27

 과거의 유물은 반드시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에 고고하게 잠들어 있어야만 할까? 고고학이 땅속의 흔적을 파헤쳐 과거를 복원하는 엄숙한 학문이라면, 여기 그 고고학적 방법론을 현대미술의 무대로 가져와 마음껏 '유희'하는 작가들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대안적 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라프'에서 9월 12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고고학 유희'는 바로 이 즐거운 지적 탐험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BANNERAREA50CD]먼저, 연기백 작가는 도시의 고고학자다. 그는 재개발과 철거로 사라져가는 공간, 사람들이 떠나간 이주의 현장을 누비며 버려진 사물들을 수집한다. 낡은 문짝, 손때 묻은 목가구, 깨진 타일 조각 등은 그의 손을 거쳐 단순한 폐기물이 아닌, 한 시대의 생활사와 개인의 서사를 품은 '현대의 유물'로 재탄생한다. 특히 오래된 목가구를 불로 태워 그을린 표면 아래 숨겨진 나뭇결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마치 땅의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주세균 작가는 디지털 세계의 유물을 발굴한다. 그는 인터넷을 떠도는 저화질의 픽셀 덩어리, 즉 '밈(meme)'이 되거나 무심코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원본의 아우라를 상실한 이 데이터 조각들을 그는 다시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창조한다. 이러한 과정은 '국보'나 '보물'과 같이 국가가 공인하는 전통적 가치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다. 그는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며, 디지털 시대의 유물은 어떤 형태가 될 수 있는지를 물으며 관습적인 미적 기준을 흔든다.

 


가장 파격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작가는 최은철이다. 그는 국보급 도자기나 불상 같은 상징적인 유물들을 '설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이 달콤하고 영롱한 유물들은 영원하지 않다.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녹아내리거나 형태가 무너지며 점차 소멸해간다. 작가는 이 허무하고 아름다운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문명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필연적인 덧없음과 유한함을 성찰하게 만든다. 영원할 것 같던 위대한 문명의 산물도 결국은 시간 속에서 변하고 사라진다는 진리를 감각적으로 체험시키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황규진 기획자는 "세 작가의 개성 넘치는 작업 방식은 '고고학'이라는 공통된 키워드 아래 한 공간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며, "물리적, 디지털적, 개념적 차원에서 과거를 재해석하는 이들의 '유희'를 통해 관객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과 감각적 경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딱딱한 역사가 아닌, 예술가들의 놀이터가 된 고고학의 세계에서 지적인 유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기사 강준혁 기자 Kang_hyuk2@issuenfac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