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단색화 거장, 물로 그린 사계절의 완성
2026-08-28 17:06
캔버스 위에는 붓이 지나간 자국도, 색과 색을 가르는 날카로운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구름이 흩어지거나 오로라가 스며드는 듯한 몽환적인 색의 흐름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물에 풀린 안료들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서서히 가라앉으며 만들어낸 부드러운 깊이감은 관람객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아둔다. 조현화랑은 김택상 작가의 개인전 ‘그대로(As It Is)’를 서울과 부산의 세 곳 전시장에서 동시에 개최하며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BANNERAREA50CD]

절제된 화면 구성과 반복적인 행위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포스트 단색화’의 주요 흐름으로 평가받는다. 김택상은 자신의 그림을 맑고 엷은 그림이라는 뜻의 ‘담화(淡畵)’라고 명명한다. 강렬한 색채 대비나 화려한 기교 대신, 물과 안료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농담의 차이를 포착한다. 이러한 기다림의 미학은 작가 개인의 개입을 줄이고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수용하는 그의 철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전시장에는 10m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회화와 함께 영상, 설치 작품들이 조화를 이루며 김택상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전시 제목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색채의 층위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물과 색이 캔버스 위에서 유영하며 만들어낸 숭고한 흔적들은 오는 11월 8일까지 서울과 부산의 조현화랑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사 강준혁 기자 Kang_hyuk2@issuenfac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