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2일 화요일

사라졌던 여성들의 예술, 리움서 다시 숨 쉰다

2026-06-01 18:46

 리움미술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했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여성 작가 11인의 '환경 미술'을 복원해 선보인다. 이번 기획전은 좌대에 놓이거나 벽에 걸리는 전통적인 형식을 거부하고, 관람객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 빛과 소리, 공기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환경(Ambiente)'이라는 장르에 주목한다. 전시의 중심에는 1970년 정부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던 한국 1세대 행위예술가 정강자의 '무체전'이 자리 잡고 있다. 56년 만에 다시 숨 쉬게 된 이 공간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지워진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미술사 안으로 다시 호명하는 상징적인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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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정강자의 '무체전'은 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의 정수를 보여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회화도 조각도 없는 이 낯선 공간을 사흘 만에 철거했으나, 리움은 유족의 증언과 아카이브 자료를 토대로 이를 완벽히 재구성했다. 특히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작가의 목소리는 AI 기술을 통해 복원되어 관람객들에게 "여러분은 지금 나의 작품 안에 들어와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한국 미술사가 오랫동안 그를 누드 퍼포먼스 작가로만 한정 지었던 편견을 깨고, 공간 자체를 매체로 삼았던 선구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된다.

 

전시는 아시아 환경 미술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결정적인 보완책들도 포함하고 있다. 뮌헨과 로마를 거쳐 리움에 도착한 이번 순회전은 실험음악의 거장 라 몬테 영과 마리안 자질라, 그리고 한국계 작가 최정희가 1960년대부터 이어온 '드림 하우스'를 추가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정강자의 작업이 과거의 시간을 되살리는 '복원'이라면, 드림 하우스는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현재진행형의 시간'을 보여준다. 이 두 시간이 한 공간에서 조응하며 환경 미술이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형식임을 증명한다.

 


리움미술관의 이번 기획은 현재 동시에 열리고 있는 다른 전시들과도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순간의 상황을 작품으로 삼는 티노 세갈의 전시와 한국 최초의 미술전문기자 이구열의 아카이브전은 '기록'과 '사라짐', 그리고 '복원'이라는 키워드로 서로 맞닿아 있다. 누군가가 남긴 꼼꼼한 기록이 있었기에 사라졌던 50년 전의 환경이 다시 세워질 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사라지는 퍼포먼스 역시 미래의 기록을 통해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세 전시가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번 전시는 남성 중심의 제도권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작가들에게 '환경'이 얼마나 해방적인 공간이었는지를 역설한다. 부드러운 나일론 천으로 근대 건축의 딱딱한 질서에 도전하거나, 깃털로 가득 찬 방을 통해 남성적인 대지 미술에 저항했던 이들의 시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도발적이다. 사라지고 파괴되었던 여성들의 예술적 영토를 다시 구축한 이번 전시는 봉인된 역사를 해제하고 미래의 미술사를 다르게 서술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를 제공하며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기사 강준혁 기자 Kang_hyuk2@issuenfac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