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8일 금요일

감실 치우고 사람 앉혔다, 슈미트 신부의 혁신

2026-08-27 20:00

 경북 칠곡의 왜관수도원 내 자리한 문화영성센터는 건축가 승효상의 철학이 집약된 '경계 위의 집'으로 불린다. 수도원 안쪽에서 바라본 건물의 첫인상은 노출 콘크리트의 덤덤함과 절제미가 강조되어 얼핏 평범한 오피스텔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는 세상과의 단절과 연결을 동시에 꾀하는 건축가의 의도된 설계다. 건물 뒤편을 가로지르는 긴 콘크리트 벽은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긋는 듯하지만, 그 벽 사이로 낸 좁고 긴 틈은 빛과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며 완전히 닫히지 않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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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건축물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연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회의실 벽면을 가득 채운 수백 자루의 망치는 베네딕도회의 핵심 가치인 '기도하고 일하라'는 정신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4층 옥외 공간인 하늘 성당의 첨탑 안쪽에서는 작은 창을 통과한 빛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데, 수도자들은 이를 '베네딕도의 별'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종교적 신념과 인간의 노동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임을 증명한다.

 

문화영성센터의 탄생 배경에는 건축가 승효상과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의 깊은 우정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대구 군위의 사유원에 지어질 예정이었던 호텔 설계안이 자금 문제로 미뤄지던 중, 피정의 집이 절실했던 왜관수도원에 그 밑그림이 기증된 것이다. 유 회장은 사비를 털어 건축비를 지원했고, 수도원은 이에 화답해 유 회장의 장인이자 청빈한 삶을 살았던 김익진을 기리는 홀을 마련했다. 건축을 매개로 맺어진 이들의 인연은 공간에 따뜻한 인문학적 온기를 더한다.

 


칠곡의 건축 지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은 독일인 알빈 슈미트 신부다. 그는 1966년 왜관성당을 지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건축으로 번역해냈다. 슈미트 신부는 성당의 중심이었던 감실을 옆으로 물리고 제대를 신자 쪽으로 끌어당겨 사제와 회중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이는 교회의 권위보다 사람을 중심에 두려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는 생전 180여 채의 건축물을 남기며 담장을 없애고 마당을 이웃에게 내어주는 등 나눔의 건축을 실천했다.

 

결국 칠곡의 건축물들을 관통하는 핵심 질료는 짓는 이들의 '마음'이다. 재일교포 건축가의 딸 유이화부터 푸른 눈의 신부 슈미트, 그리고 경계 밖의 관점을 유지하는 승효상까지, 이들은 모두 경계의 땅 칠곡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치유와 화해의 공간을 빚어냈다. 전쟁의 비극이 서린 낙동강 방어선의 땅은 이제 이들이 남긴 건축적 유산을 통해 사색과 평화의 땅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좋은 건축은 건물의 외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예우와 배려에서 시작됨을 칠곡의 집들은 웅변하고 있다.

 

기사 강준혁 기자 Kang_hyuk2@issuenfac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