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걸작 216점 한자리에…역대 최대 전시
2026-09-28 09:06

[BANNERAREA50CD]그림 속 정선은 한 손에 부채를 든 채 화분을 바라보며 툇마루에 편안하게 앉아 있다. 반듯한 기둥과 가지런한 마루, 책으로 가득한 방은 선비의 단정한 생활을 보여주지만, 흐트러진 신발과 느슨한 자세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느껴진다.
<경교명승첩>은 정선이 1741년 양천현령으로 있을 당시 평생의 벗인 시인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만든 화첩이다. 한양과 한강 주변 풍경, 고사인물화 등 33점이 담겼으며 그동안 따로 공개됐던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전시는 정선의 작품을 지역과 주제에 따라 소개한다. 한양과 한강을 다룬 작품에서는 정선이 실제 생활했던 공간과 주변 명소를 확인할 수 있다. ‘인곡유거’에는 인왕산 자락의 자택이 등장하고, ‘미호-석실서원’에는 스승 김창협에 대한 존경이 담겼다.

인왕산 동쪽 기슭의 명소를 그린 ‘청풍계’도 별도의 공간에서 선보인다. 정선이 64세 때 그린 이 작품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산을 표현해 고목과 절벽을 더욱 웅장하게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천으로 굽이진 동선을 만들어 관람객이 실제 골짜기를 지나가는 듯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이번 전시에는 총 84건, 216점이 출품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정선 컬렉션을 보유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128점을 내놓았으며 국보 1건 1점과 보물 7건 71점도 포함됐다. 연구자들이 그동안 도판으로만 접했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정선의 작품 세계가 진경산수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여산초당’은 중국 고사를 다루면서도 초당 주변 풍경을 정선 특유의 산수화법으로 표현했다. 인물에게는 조선식 복장을 입혔다.
<소상팔경도첩>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산수 주제를 조선의 풍경처럼 풀어냈고, <화훼영모화첩>에서는 꽃과 동물을 세밀하게 관찰한 정선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정선의 대표 소재인 금강산이다. ‘금강전도’와 ‘풍악내산총람’을 비롯해 금강산을 그린 작품 8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36세에 그린 <신묘년풍악도첩>과 72세에 제작한 <해악전신첩>을 비교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한 정선의 화법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해악전신첩>에 수록된 그림 21점이 모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 관계자는 이 정도 규모의 정선 전시는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지난 7월 문을 연 상설전시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 미인도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한지로 꾸민 공간에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감상할 수 있다.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전시는 오는 12월 27일까지 이어진다.
기사 강준혁 기자 Kang_hyuk2@issuenfact.net